[같은 정년, 다른 노후 ①] 20년 공직을 접고 로펌으로 간 친구

지난 5월, 정년을 앞둔 골프 친구 여덟 명이 모였습니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함께 자란 죽마고우들이죠. 라운딩 내내, 밥자리에서, 대화의 팔 할은 결국 노후 이야기 — 정년과 공무원연금 지급개시연령, 그리고 ‘앞으로 뭐 하고 살까’로 흘렀습니다.

“우리, 몇 살까지 뭐 하며 살아야 할까?”

같은 나이, 같은 정년. 그런데 여덟 명의 노후는 놀랄 만큼 달랐습니다.

누구는 공무원연금 지급개시연령만 바라보며 정년을 채웠고, 누구는 그 전에 스스로 다른 길을 냈죠. 이 이야기를 한 명씩 풀어보려 합니다. 그 첫 번째는 제가 가장 가까이 지낸 친구, K입니다.

승승장구하던 엘리트 공무원

K는 1990년대 초,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몇 해 일하다 좋은 기회로 경제 관련 정부 부처로 자리를 옮겼죠. 사람 좋아하고, 일 잘하고, 발이 넓은 친구였습니다.

고시 출신들이 즐비한 그곳에서도 금세 인정받아 장관 비서실을 거치고, 굵직한 업무를 척척 소화하며 6급, 5급으로 승승장구했습니다.

술자리에서 꺼낸 뜻밖의 이야기

그러던 어느 날, 둘이 술 한잔하는데 K가 불쑥 이직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곧 20년이야. 같은 부서 친한 선배들이 벌써 대기업 임원으로, 대형 로펌으로 가 있는데… 나한테 오라고 자꾸 그래.”

담담하게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자기는 고시 출신이 아니라 아무리 잘 풀려도 3, 4급이 끝일 거라고. 공무원연금이라는 든든한 노후는 있지만, 아이 둘 키우며 지금 살림은 늘 팍팍하다고.

“20년이면 연금 바닥은 확보돼. 그러면 이직해서 경제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해보고 싶어.”

왜 “20년이면 바닥은 확보”라고 했을까 — 공무원연금 지급개시연령의 힘

공무원연금 지급개시연령이 55세에서 단계적으로 60~65세로 상향되고 재취업 소득이 많으면 절반까지 정지되는 구조를 설명한 도식
이미지: 뱅커노트 자체 제작

여기엔 공무원연금의 사정이 숨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재직기간(20년 이상)만 채우면 비교적 이른 나이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K처럼 1990년대 초에 임용된 세대는, 당시 규정상 임용·퇴직 시기에 따라 50대 중반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K의 경우가 55세였죠.

이후 여러 차례 개편으로, 요즘 퇴직하는 공무원은 개시 연령이 60세에서 65세까지 크게 늦춰졌습니다. K 세대가 그만큼 유리했던 셈이죠.

그러니 K가 “20년이면 연금 바닥은 확보된다”고 한 말은 정확했습니다. 20년을 채우는 순간, 55세부터 평생 나오는 노후의 바닥이 깔리는 것이었으니까요.

나는 그 선택을 응원했다

나는 후자를 응원했습니다. 바닥(연금)을 깔아뒀으니, 민간 소득으로 지금의 팍팍함을 풀 수 있다면 나쁠 게 없었습니다. K는 대기업 임원(상무) 제안과 로펌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로펌을 택했습니다.

밥값이 뒤바뀌던 날

그 뒤로 우리 사이에 재미있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밥값과 술값입니다. 공무원으로 있던 20년 동안은 은행원인 제가 대부분 냈습니다. 그런데 로펌으로 옮기고 나서는 대부분 K가 냅니다.

사소해 보여도, 저는 이 ‘밥값의 역전’만큼 K의 삶이 달라졌음을 잘 보여주는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공무원으로 계속 있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함께 골프를 시작하기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정년을 앞둔 지금, 그리고 아내의 걱정

K는 2026년 12월, 로펌에서 정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로펌도 정년은 있지만 급여를 줄이면 몇 년 더 일할 수 있어, 본인은 15년은 채우고 싶어 하죠.

다만 로펌 생활에는 이면이 있습니다. 클라이언트와의 술자리가 잦다는 겁니다. 술을 좋아하는 K이지만, 요즘은 아내가 건강을 걱정해 “이제 그만 다니라”고 성화라며 웃습니다. 경제적 여유를 얻은 자리에도, 그 나름의 대가가 있는 셈이죠.

재미있는 건, K가 지금 그 연금을 절반만 받고 있다는 겁니다. 55세부터 나오기 시작했지만, 로펌에서 소득이 있다 보니 소득이 많으면 연금의 일부(최대 절반)를 정지하는 규정이 적용되거든요.

K는 웃으며 말합니다. “그 절반 받는 걸로 골프 치고 술 사는 거야.” 현역 소득에, 연금 절반에, 곧 정년. 노후의 층이 겹겹이 쌓인 사람의 여유입니다.

아이 둘은 다 커서 하나는 교사로, 하나는 취업해 자리 잡았습니다. 이제 부부만 챙기면 되는 홀가분한 처지입니다.

“몇 살까지, 뭐 하며 살까?”

요즘 골프장에서 우리가 가장 자주 나누는 화두가 그겁니다. K가 있는 로펌에서 먼저 은퇴한 선배 중엔, 돈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그저 몸을 움직이고 싶어 택시 운전대를 잡은 분이 두어 명 있다고 합니다. K는 거기까진 생각 없어 보이지만, 우리 중 대기업에서 은퇴한 다른 친구는 이미 자격시험까지 붙어 뜻이 있어 보입니다.

K는 말합니다. “난 퇴직하면 좀 쉬고 싶어.” 사십 년 가까이 달려온 사람의 당연한 바람이겠죠.

은행원으로서, 한 가지만

공무원의 길과 로펌의 길. 옆에서 30년 넘게 지켜본 저에게 두 삶은 확실히 달라 보였습니다. K는 스무 해 공직으로 평생 나오는 연금이라는 바닥을 깔아두고, 그 위에서 경제적 자립을 택했습니다. 결과만 보면 꽤 영리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안정된 연금이냐, 지금의 여유냐.’ 이건 K만의 고민이 아닙니다. 정년을 앞둔 우리 대부분이 한 번쯤 서게 되는 갈림길이죠. 30년 은행에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핵심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평생 나오는 연금 바닥을 먼저 깔았느냐’입니다.

바닥을 확보한 사람은 그 위에서 얼마든지 더 벌어도 되는 자유가 생기고, 바닥 없이 소득만 좇으면 그 소득이 끊기는 날 노후가 통째로 흔들립니다.

같은 정년, 다른 노후. 다음 편에서는 올해 정년을 맞은 또 다른 친구 — 평생 제복을 입었던 경찰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 이 글은 개인 경험과 공개 제도 정보를 바탕으로 하며, 특정 투자·재무 자문이 아닙니다. 연금 수급 조건은 개인별로 다르므로 정확한 내용은 공무원연금공단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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