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앞두고, 술자리에서 우리가 두 시간을 붙잡고 말린 친구가 있습니다. 퇴직 후 재취업을 두고 벌어진 일이었죠. 대기업에서 30년을 일한 친구 L 이야기입니다.
L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서 30년을 일했습니다. 정년을 1년 앞두고, 조건 좋은 준정년(희망퇴직) 프로그램으로 먼저 회사를 나왔죠.
정말 성실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늘 솔선수범하는 친구입니다. 그런 사람이라 퇴직 후에도 가만히 있질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퇴직 후 재취업 과정에서, 은퇴를 앞둔 누구나 새겨둘 만한 일을 겪었습니다.
50대에 노무사에 도전하다
퇴직하자마자 L은 노무사 시험에 도전했습니다. 6개월간 학원과 도서관에서 공부만 했죠. 50대에 시작한 도전이었습니다.
결과는 낙방이었습니다. “50대에 노무사 붙는 건 전례가 없다더라.” L은 껄껄 웃으며 말했습니다.
잠깐 쉬었습니다. 하지만 그 활력 넘치는 친구가 오래 쉴 리 없었죠.
친구 회사의 본부장이 되다
퇴직 8개월쯤, L은 가장 친한 대학 동기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요식업체에서 본부장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술자리에서 하는 일을 들어봤습니다. 맡은 업무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산재 처리, 외국인 근로자 고용, 그리고 안전관리 책임자까지. 회사의 리스크란 리스크는 다 짊어진 자리였죠.
왜 맡았을까요? 돈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친구가 잘됐으면 해서. 급여 많이 안 줘도 돼.” 대기업 출신답게 소기업의 주먹구구식 프로세스를 척척 개선하고, 직원들보다 더 궂은일까지 도맡았습니다. 그게 L이라는 사람이니까요.
우리가 2시간 동안 말린 이유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두 시간을 말렸습니다. “당장 그만둬라.”
이유는 하나, 중대재해처벌법입니다.
2024년 1월부터 이 법은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됩니다.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나면, 안전·보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영책임자(대표)는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법적 처벌의 1차 대상은 대표(경영책임자)입니다. 하지만 안전·보건 실무를 총괄하고 ‘안전관리 책임자’로 이름을 올린 사람도, 사고가 나면 책임 논란의 한복판에 서게 됩니다. 정년까지 성실히 일한 사람이 남의 회사에서 그런 위험을 떠안을 이유가 없었죠. 우리는 한사코 말렸습니다.
결국, 발을 빼다
2026년 1월 신년회에서 L을 만났습니다. 그 회사를 그만뒀다고 하더군요.
산재 건과 불법 외국인 고용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친구에게 말하고 나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말린 대로였습니다. 다행히 큰일로 번지기 전에 발을 뺐죠. 저는 이 이야기를 꼭 은퇴하는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투자는 하지 마라
사실 L이 그 회사에 들어갈 때, 제가 물었습니다. “친구가 투자하라고 하진 않던?”
투자 이야기가 오갔다고 하더군요.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절대 하지 마라. 차라리 택시를 해.”
다행히 L은 투자는 하지 않고 취업만 했다가 나왔습니다. 지인의 사업은 우정과 별개로 냉정하게 봐야 합니다. 퇴직금은 한 번 잃으면 되돌릴 시간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뭘 하며 살까”
회사를 나온 L은 곧바로 방송통신대 농업 관련 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기타 동아리 활동에도 푹 빠졌죠.
그러면서도 “뭔가는 해야 한다”는 생각을 놓지 못합니다. 택시 자격증까지 따두고, 이제 개인택시를 해볼까 고민 중입니다.
L은 서울에 자가 한 채가 있고, 자녀도 다 커서 각자 자리를 잡아가는 중입니다. 돈이 급해서가 아닙니다. 몸을 움직이고, 어딘가 소속되고, ‘할 일’을 갖고 싶은 겁니다.
퇴직 후 재취업, 은행원으로서 두 가지만
첫째, 퇴직 후 재취업에서 ‘책임지는 자리’는 신중해야 합니다. 특히 안전·법적 책임이 따르는 자리는, 성격 좋고 부지런한 사람일수록 더 깊이 발을 담그게 되니 위험합니다.
둘째, 자산이 있어도 ‘매달 들어올 돈’의 공백은 남습니다. L은 집 한 채가 있지만 국민연금은 64세부터입니다(1965~68년생 기준). 앞으로 3년, 명퇴금과 저축으로 그 공백을 건너는 중이죠. 공무원으로 일찍부터 연금 바닥을 깔아둔 친구와 딱 대비되는 지점입니다.
집이 있다고 노후가 완성되는 게 아닙니다. 매달 들어오는 돈과, 매일 할 일 — 이 두 가지가 채워져야 비로소 ‘노후’가 섭니다.
같은 정년, 다른 노후. 다음 편에서도 또 다른 친구의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 개인 경험과 공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글이며, 특정 법률·투자·재무 자문이 아닙니다. 연금·법률 관련 사항은 국민연금공단, 고용노동부 등 공식 기관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