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도, 은퇴도 없이 평생 현역으로 사는 친구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친구 이야기입니다.
고향에서 초·중·고를 함께 다닌 오랜 벗, 친구 H입니다. 골프 멤버는 아니지만 제겐 각별한 친구죠.
운동선수의 꿈, 그리고 방향 전환
H는 학창 시절부터 활발하고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친구들 사이 인기도 좋아, 동창회장을 오래 맡았죠.
중·고교 때는 운동선수였습니다. 그런데 대학 시절 부상으로 운동을 접어야 했죠. 꿈이 꺾인 자리에서, 그는 새로 할 일을 찾아야 했습니다.
한창 운동만 바라보던 청년에게, 그건 인생의 방향을 통째로 다시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터라 고민이 깊었습니다. 그러다 자동차가 한창 붐을 타던 1990년대 초, 정비소에 들어가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죠.
처음엔 타이어 펑크 하나 때우는 데 하루가 걸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맨손으로 기술을 익혀갔습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밑바닥 일이었지만, H는 묵묵히 손에 기름때를 묻혔습니다. 운동으로 다져진 근성이 그때 빛을 발했는지도 모릅니다.
내 건물, 내 정비소
어느 정도 기술이 익자, H는 자기 정비소를 열었습니다.
시골 집안 형편이 좀 받쳐준 덕에, 고향 재산을 정리해 수도권의 한 신도시에 땅을 사고 4층 건물을 올렸죠. 1층은 정비소, 2층은 임대, 3·4층은 어머니와 본인이 사는 집으로.
한동안 정말 잘됐습니다. 하루에도 큰돈이 들어왔다고 하죠. 제가 회사 연수원에 갈 일이 있으면, 근처라 자주 얼굴을 봤습니다.
그러다 IMF와 금융위기가 닥쳤습니다. 그때 H가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잘될 땐 하루에 몇백씩 들어와서 술도 참 많이 먹었지. 근데 어려울 땐 힘들더라. 그래도 내 가게라 월세가 안 나가고, 내가 직접 정비하니까 버텼어.”
자영업자에게 ‘내 것’이 있다는 것. 위기 때 그것이 얼마나 큰 버팀목인지, 저는 그 말에서 배웠습니다.
번듯한 사무실은 아니어도, 자기 손으로 세운 건물과 몸에 밴 기술은 어떤 위기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자산이었습니다.
“공부 안 하던 친구가, 먹고살려고 평생 공부”
세월이 흐르며 자동차는 커넥티드카처럼 전자장비 덩어리로 바뀌었습니다. H도 또 한 번 고생했죠.
언젠가 정비를 맡기러 갔더니, 가게에 어려운 정비 책들이 잔뜩 쌓여 있더군요. 제가 웃으며 한마디 했습니다. “야, 너 학교 다닐 때 공부 안 한 거, 지금 다 하는 것 같다.”
그랬더니 H가 껄껄 웃으며 답했습니다. “먹고살려니 힘들다, 하하.” 알고 보니 근처 대학 자동차학과에 다시 등록해 최신 기술을 재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몇 해 전부터는 아예 수입차 전문 정비소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검사 장비를 들이고, 온라인 홍보로 고객을 빠르게 늘렸죠.
그 실력은 밖에서도 인정받았습니다. 지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지자체의 표창을 받기도 했죠.
평생 현역, 아들에게 물려줄 일이 있다
지금 H의 정비소에는 직원 대여섯 명이 함께 일합니다. 그중에는 아들도 있죠.
각자 온라인으로 유치한 고객의 차를 정비하고 인센티브를 받는 방식으로 운영합니다. 아들에게 미리 가업으로 물려줄 생각으로 하나씩 준비해 가는 겁니다.
아버지가 40년 쌓은 기술과 단골의 신뢰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셈이죠.
H는 노후 걱정이 별로 없습니다. 자기 건물이 있고, 무엇보다 몸에 밴 기술이 있으니까요. 자영업자라 국민연금은 스스로 챙겨야 하지만, 건물과 기술이라는 더 큰 안전판이 그를 받치고 있죠.
요즘은 아내와 여행도 자주 다니고,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나들이도 많이 다닙니다.
부러운 친구, 그리고 배움
늘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H를 보면, 저는 배울 것이 참 많습니다.
운동선수의 꿈이 꺾였을 때 주저앉지 않았고, 위기 때 ‘내 것’으로 버텼고, 시대가 바뀔 때마다 다시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아들에게 물려주려 합니다.
정년이 있는 우리는 ‘언제까지 일할까’를 걱정하지만, H는 ‘언제까지고’ 일할 수 있습니다. 은퇴가 없는 대신, 물려줄 일이 있는 삶. 그 바탕엔 평생 갈고닦은 기술과, 스스로 일군 ‘내 것’이 있었습니다.
같은 정년, 다른 노후. 다음 편에서도 또 다른 친구의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이며, 특정 투자·창업 권유가 아닙니다. 자영업자의 노후 준비는 국민연금공단 등 공식 기관 정보를 함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