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당신의 금융 정보, 지금 몇 곳에 흩어져 있나요?
잠깐 생각해보세요.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금융 정보가 몇 곳에 저장되어 있을까요?
주거래 은행 하나, 신용카드사 두세 곳, 증권사 하나, 보험사 두세 곳, 인터넷 전문은행, 카드 연결 핀테크 앱까지.
적게 잡아도 열 곳이 넘는 금융기관이 여러분의 수입·지출·대출·투자 정보를 각자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데이터의 주인인 여러분은,
내 금융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없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 마이데이터가 도입되기 전까지는요.
저는 1995년 외환은행 IT본부에서
CRM과 PB 시스템 구축 업무를 시작으로,
은행 IT와 마케팅 현업 및 영업점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이후 하나은행 통합 과정에서는 디지털혁신그룹에서 미래금융채널 전략과 핀테크 사업 추진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퇴직 이후 현재까지
금융권 IT 시스템 구축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2021년 4월부터 하나은행 마이데이터 초기 시스템 구축부터 마이데이터 2.0 대면서비스 구축까지 직접 수행한 금융 IT 및 비즈니스 컨설팅 전문가입니다.
오늘은 마이데이터가 왜, 어떻게 탄생했는지 30년 금융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금융정보 독점 시대 — 은행이 당신보다 당신을 더 잘 알고 있었다
1995년,
제가 처음 CRM 시스템을 구축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은행은 고객 한 명 한 명의 거래 패턴, 잔액 변화, 대출 이력, 심지어 ATM 이용 시간대까지 데이터로 쌓고 있었습니다.
당시 금융권은 고객 데이터를 한 곳에 모으는 EDW(전사적 데이터 저장소)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금융권의 초창기 빅데이터 시스템이었던 셈입니다.
고객이 월급날 잔액이 늘면 적금 상품 문자가 왔고,
대출 만기가 다가오면 갱신 안내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각 은행에서 잘 쌓아둔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의 Needs를 파악해, 적절한 시기와 시간에 고객에게 오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고객 본인은 어땠을까요?
A은행 앱에서는 A은행 거래 내역만 볼 수 있었습니다.
B카드사 앱을 따로 열어야 카드 사용 내역이 보였고,
C증권사 앱을 또 열어야 투자 현황이 보였습니다.
자신의 전체 금융 상황을 파악하려면 기관 수만큼 앱을 오가야 했어요.
은행은 고객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객은 자신의 금융 전체를 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마이데이터 이전 시대의 현실이었습니다.
마이데이터 경쟁의 서막 — 33개 사업자, 417개 정보제공자
2021년 12월 1일 시범 적용을 시작으로,
2022년 1월 5일 국내 금융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공식 시행됩니다.
당시 본허가를 받은 사업자는 33개사,
정보를 제공하는 금융기관은 417개였습니다.
처음에는 조용히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서비스 시행 전부터 분위기는 뜨거웠습니다.
은행·카드사·핀테크·빅테크 할 것 없이 모두 마이데이터 경쟁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하나은행·국민은행·농협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은 물론 네이버파이낸셜·카카오페이·토스(비바리퍼블리카)·뱅크샐러드까지 모두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앞다투어 준비했습니다.
저는 당시 하나은행 마이데이터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하면서 이 경쟁을 바로 현장에서 지켜봤습니다.
“누가 먼저 고객의 데이터를 연결하느냐”가
새로운 금융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이후 어떻게 됐을까요?
서비스 시행 이후 비대면 채널에서의
회원 유치와 자산 연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월별 정보 전송 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마이데이터는 단순한 새로운 서비스가 아니라,
금융업계 전체의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됐습니다.
소비자 권리 부재 — 내 데이터인데 왜 내가 못 쓰나
2010년대 들어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토스·뱅크샐러드 같은 서비스들이
“당신의 모든 금융을 한눈에 보여드립니다”를 내세우며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사용자들은 열광했습니다.
드디어 내 금융 전체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런데 이 서비스들이 사용한 방식이 스크래핑이었습니다.
사용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받아
금융사 시스템에 대신 로그인하는 방식이었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방식은 보안상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용자의 인증 정보가 제3자에게 넘어가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소비자들은 편의성 때문에 기꺼이 이 서비스를 사용했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데이터를 통합해서 보고 싶다는
소비자의 욕구가 강했다는 뜻입니다.
유럽은 이미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2018년 GDPR 시행 이후, 개인의 데이터 이동권(Right to Data Portability)이 법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했죠.
쉽게 말하면:
“내 데이터를 내가 다른 서비스로 옮길 수 있는 권리”가 생긴 것입니다.
반면 한국의 금융 소비자는 자신의 데이터가 수십 곳에 흩어져 있어도 이를 통합할 법적 권리가 없었습니다.
변화의 씨앗 — 핀테크 혁명이 만든 제도화의 요구
2015년,
제가 하나은행 미래사업본부에서 핀테크 사업을 기획하던 시절입니다.
당시 은행 내부에서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토스가 간편송금으로 빠르게 사용자를 모으고 있었고,
뱅크샐러드가 자산관리 서비스로 MZ세대를 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솔직히 불편했습니다.
고객 데이터가 핀테크를 통해 흘러나가는 느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막을 수도 없었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였으니까요.
이 흐름 속에서 금융위원회는 중요한 판단을 내립니다.
“스크래핑 방식의 불안한 데이터 공유를 공식 제도로 양지화하자.”
그것이 마이데이터 제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2020년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마이데이터의 법적 근거가 마련됩니다.
마이데이터란 정확히 무엇인가 — 한 줄 정의부터 구조까지
마이데이터를 한 줄로 정의하면 이렇습니다.
“내 금융 데이터를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권리, 그리고 그 권리를 실현하는 서비스 체계”
신용정보법상 정식 명칭은 본인신용정보관리업입니다.
조금 딱딱하죠?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A은행에 있는 내 계좌 정보,
B카드사의 내 카드 사용 내역,
C보험사의 내 보험 정보.
이것들을 내가 동의한 마이데이터 사업자(은행·증권·보험사·카드사 등)에게 한꺼번에 보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데이터의 주인이 금융사에서 소비자로 바뀌는 것,
즉 내 데이터는 내가 주인이 되는 것.
그것이 마이데이터의 핵심입니다.
마이데이터가 바꾸는 세 가지 힘
마이데이터가 소비자에게 주는
실질적인 변화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통합 조회입니다.
은행·카드·증권·보험·연금까지 모든 금융 자산을 앱 하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단순한 기능이 사실 엄청난 변화입니다.
은행에서 수십 년을 다닌 저도 내 전체 금융 현황을 파악하려면 여러 앱을 오가야 했으니까요.
둘째, 데이터 이동권입니다.
A은행에서 B은행으로 갈아타고 싶을 때,
내 거래 이력을 그대로 들고 갈 수 있습니다.
대출 심사에서 “거래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불이익 받는 일이 줄어들 수 있어요.
셋째, 맞춤형 서비스입니다.
내 소비 패턴과 자산 현황을 분석해서
나에게 가장 유리한 금융 상품을 추천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은행이 혼자 갖고 있던 분석 능력을 소비자가 직접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며 — 금융 데이터의 주인은 이제 당신입니다
1995년 제가 처음 CRM 시스템을 구축할 때,
그 시스템의 목적은
은행이 고객을 더 잘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객의 데이터는 은행의 자산이었죠.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그 데이터의 주인이 바뀌고 있습니다.
은행이 아니라
소비자가 자신의 데이터를 직접 관리하고 활용하는 시대.
그것이 마이데이터가 만들어가는 세상입니다.
2021년 12월 서비스 시행 이후 마이데이터는
현재 2.0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금융 데이터를 넘어 의료·공공·통신 데이터까지 연계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어요.
다음 편에서는 마이데이터가 정확히 무엇인지, 신용정보법 정의부터 실제 구조까지 쉽게 풀어드리겠습니다.
뱅커노트 (Banker’s Note)
30년 금융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금융과 마이데이터 이야기를 쉽게 풀어갑니다.
제가 궁금해하던 부분들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풀려 있어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딱딱한 금융 내용을 이야기처럼 풀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앞으로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
마이테이터탄생과 금융권의 히스토리를 체계적으로 잘 설명하셨네요
감사합니다. 마이데이터가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는지 알아야 더 잘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즌2도 기대해 주세요! 😊
마이데이터의 역사를 누구나 알수 있는 워디으로 쉽게 정리하여 이해 하기도 용이하고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마이데이터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 풀어가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좋은 내용 읽기 쉽게 잘 써주셔서 감사해요. 끝까지 따라가볼께요 ^^
감사합니다. 끝까지 함께해 주신다니 정말 힘이 됩니다. 시즌2도 알차게 준비하고 있으니 계속 응원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