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맞고도 매일 아침 다시 넥타이를 매는 친구가 있습니다.
오늘은 다섯 번째 — 연금 받으며 재취업해, 정년이 ‘끝’이 아니었던 친구 I입니다.
예능끼 있던 동네 친구, 9급에서 과장까지
친구 I는 저와 같은 동네에서 자란 오랜 벗입니다.
어릴 때부터 노래도 잘하고, 일기도 꾸준히 쓰고, 글씨도 반듯했죠. 한마디로 예능적인 끼가 있는 친구였습니다.
옛날식으로 말하면 ‘한량끼’가 조금 있었달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공직에 들어가서는 누구보다 성실했습니다. 모임에 가면 늘 분위기를 띄우는 건 I였지만, 사무실에선 맡은 일을 빈틈없이 해내는 사람이었죠.
1990년대 초, 9급 공무원으로 시작했습니다. 서울의 한 구청에서 여러 부서를 두루 거쳐, 지난해 과장으로 정년을 맞았죠.
9급에서 과장까지, 한 계단씩 성실히 밟아 올라간 30여 년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공무원이 인기 직업이던 시절도 아니었지만, 한 조직에서 묵묵히 정년까지 걸어온 그 뚝심이 대단하죠.
탁구 실력은 구청에서 손꼽히는 1등. 퇴직 3년 전엔 골프까지 배워 요즘도 주기적으로 라운딩을 합니다.
딸 둘은 다 좋은 직장에 자리를 잡았고, 하나는 결혼도 했습니다. 자식 걱정은 내려놓은 지 오래죠. 부부만 챙기면 되니, 노후의 무게가 한결 가벼운 편입니다.
정년을 앞두고, 미리 준비한 사람
I는 정년이 다가오자 ‘그다음’을 일찍부터 고민했습니다.
현직 시절 인연으로, 퇴직하면 함께 일하자는 업체가 몇 군데 있었죠.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습니다. 정년을 앞둔 사람에게 ‘갈 곳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위안이거든요.
그런데 I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퇴직 6개월 전부터 안전·시설 관련 자격증을 따두며, 조용히 ‘일거리’를 준비했습니다. 무엇을 하든 자격 하나는 손에 쥐고 나가자는 생각이었죠.
친구들도 거들었습니다. “무리하지 마라. 퇴직하고 좀 쉬면서 차분히 정하자.” 정년을 앞두면 마음이 조급해지기 쉬운데, I는 그 조급함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년. 얼마 뒤 I는 더 좋은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지역의 한 공공 재단에서 본부장급으로 일하게 된 겁니다. 그날 한턱 단단히 얻어먹었죠.
“집에만 있기 답답해서” — 다시 출근하는 이유
사실 I는 굳이 일하지 않아도 됩니다. 연금과 사적연금만으로도 생활에 지장이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매일 아침 다시 넥타이를 맵니다.
이유를 물으면 답은 한결같습니다.
“집에만 있기 답답해. 아직 일할 나이잖아.”
실제로 정년을 맞은 친구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그겁니다.
매일 나갈 곳이 없어지면, 돈보다 시간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고요. 평생 규칙적으로 출근하던 사람일수록, 그 빈자리는 더 크게 다가옵니다.
요즘 정년은 빠른 편입니다. 예순 언저리면 충분히 더 일하고 활동할 나이죠.
그래서 I가 고른 기준은 명확했습니다. 스트레스 크지 않고, 많이 벌지 않아도, 마음 편히 보람 있게 할 수 있는 일. 큰 탈 없이 정년한 친구들의 공통된 바람이기도 합니다.
연금 받으며 재취업, 괜찮을까

여기서 많은 분이 궁금해합니다. “연금 받으면서 재취업하면, 연금이 깎이지 않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소득이 아주 많을 때 그렇습니다. 재취업 소득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공무원연금의 일부가 정지되거든요.
앞서 공무원 친구 사례에서 다룬, 소득이 크면 연금 절반까지 정지되던 그 규정입니다. 하지만 I처럼 무리하지 않는 자리는 그 걱정이 크지 않습니다.
참고로 I가 받는 연금은 대략 290만 원 안팎이라고 합니다. 공무원연금공단 자료 기준 퇴직 공무원의 월평균 연금이 280만~290만 원 수준이니, I는 평균 언저리인 셈이죠.
매달 이만한 돈이 나오는 ‘바닥’이 있으니, I는 ‘많이 버는 일’이 아니라 ‘오래 즐길 일’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돈이 아니라 보람으로 일을 고르는 자유. 그게 연금이라는 안전판이 주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젊을 때 연금과 저축이라는 바닥을 다져둔 사람만이 누리는 여유이기도 하죠.
은행원으로서, 한 가지만
I를 보며 저는 생각합니다. 정년은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
연금이라는 든든한 바닥이 있으면, 연금 받으며 재취업하는 제2의 직장도 훨씬 가볍게 고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미리 준비해 둔 자격과 경력까지 더해지면, 노후는 오히려 더 여유로워집니다.
기회는 준비한 사람에게 옵니다. I가 퇴직 6개월 전 자격증을 따둔 그 준비가, 결국 더 좋은 자리로 이어진 것처럼요.
정년이 막막하다면, 오늘부터 딱 하나만 준비해 보세요. 퇴직 뒤에도 손에 쥘 수 있는 ‘나만의 무기’ 하나 — 자격증이든, 오래 갈고닦은 취미든 상관없습니다.
탁구 치고, 골프 치고, 여행 다니며, 마음 편한 일까지. I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여유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원래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친구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말이겠죠. 정년은 인생의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에 가까운지도 모릅니다.
같은 정년, 다른 노후. 다음 편에서도 또 다른 친구의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 개인 경험과 공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글이며, 특정 투자·재무 자문이 아닙니다. 공무원연금·연금 정지 관련 사항은 공무원연금공단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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